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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처럼: 산에서 권세를 가지고 가르치다

Guru 고루(गुरु)는 산스크리트어에서 ‘Gu’ (어둠)와 ‘Ru’ (빛)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고루는 참된 지식의 빛으로 어둠의 무지를 해소하기 위해 가르치는 역할을 합니다. 갈릴리 해안에서 말씀드리는 것처럼, 예수님은 가르침으로서 그 영향이 1900년이 지난 현재의 인도까지 느껴지며 마하트마 간디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간디와 예수의 산상 수훈

마하트마 간디

예수가 태어난 지 1900년이 지난 영국에서, 현재 마하트마 간디로 알려진 인도 출신의 젊은 법대생이 성경책을 받았습니다. 그가 예수의 가르침을 읽었을 때, 그는 산에서의 설교로 알려진 것을 다시 말합니다

“내 마음에 와 닿았던 산상수훈.”

MK 간디, 자서전 또는 진실에 대한 나의 실험 이야기. 1927년 p.63

예수님의 ‘다른 뺨도 돌려라’라는 가르침은 간디에게 고대 힌두교의 비상과 비살해 개념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했습니다. 간디는 이후 이 가르침을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라는 형태로 정치적인 힘으로 발전시켰으며, 이는 영국 지배자들과 비폭력적인 비협력을 통한 저항을 의미했습니다. 몇십 년에 걸친 사티아그라하(satyagraha)운동은 인도가 대부분 평화로운 방식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유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해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예수의 산상 수훈

예수님이 악마의 시험을 받은 후에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가장 긴 설교는 산상수훈이라고 불립니다. 이곳에서는 전체 설교를 읽으며 강조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모세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 더 깊은 통찰력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21 “모세의 법에는 ‘살인하지 말아라. 살인하면 누구든지 재판을 받게 된다’ 라고 쓰여 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형제에게 이유 없이 화내는 사람은 재판을 받고, 자기 형제를 어리석다고 욕하는 사람은 법정에 끌려가게 될 것이며, ‘이 미련한 놈아!’ 하고 말하는 사람은 [e]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다.

23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와 화해하라. 그리고 와서 예물을 드려라.

25 너를 고소하려는 사람과 함께 법정으로 갈 때 너는 도중에 그와 재빨리 타협하라. 그렇지 않고 재판을 받는 날이면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

26 그렇게 되면 네가 마지막 한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절대로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5:21-26

간통

27 “또 율법에는 ‘간음하지 말아라’ 고 쓰여 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정욕의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하였다.

29 오른눈이 너를 죄 짓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을지라도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더 낫다.

30 또 오른손이 너를 죄 짓게 하면 그 손을 잘라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을지라도 온 몸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마태복음 5:27-30

이혼

31 “또 율법에 ‘자기 아내와 이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녀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어야 한다’ 라고 쓰여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일도 없는데 자기 아내와 이혼하는 사람은 아내로 간음하게 하는 자이며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하는 자이다.

마태복음 5:31-32

맹세

33 “또 옛 사람들에게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주님께 맹세한 것은 다 지켜라’ 고 한 말을 들어서 알 것이다.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절대로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땅은 하나님의 발판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예루살렘은 위대한 왕의 도시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가 없다.

37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만 말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태복음 5:33-37

눈에는 눈

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한 말을 듣지 않았느냐?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 대어라.

40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빼앗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 주어라.

41 누가 네게 억지로 오 리를 가자 하거든 십 리를 가 주어라.

42 네게 요구하는 사람에게 주고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말아라.

마태복음 5:38-42

적에 대한 사랑

Carl Bloch , PD-US-expired , Wikimedia Commons를 통해

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 는 말씀을 듣지 않았느냐?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도리이다. 하나님은 해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다 같이 비치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과 의롭지 못한 사람에게 비를 똑같이 내려 주신다.

46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너희가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무원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마태복음 5:43-48

산상 수훈은 권위를 개시한다

예수님은 “당신들은 그것이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말한다…”라는 형식으로 가르쳤습니다. 이 구조에서 그는 먼저 모세에게서 인용한 다음 명령의 범위를 내적 동기와 생각과 말로 확장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엄격한 명령을 받음으로써 가르쳤고 그것들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가 모세의 법률을 어떤 방식으로 확장했는지입니다. 그는 자신의 권한을 바탕으로 이를 행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말하며 명령의 범위를 넓혔습니다. 그가 단순히 가정한 이 권한이 그의 청취자들에게 강하게 다가갔습니다.

28 예수님이 이 말씀을 끝내시자 군중들은 그 가르치심에 몹시 놀랐다.

29 왜냐하면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는 분답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7:28-29

예수님은 큰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서 가르치셨습니다. 이전 성서의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했지만, 여기서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음으로 ‘그리스도’라는 칭호로 예견된 시편 2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나에게 구하라.
내가 모든 나라를 너에게 줄 것이니
온 세상이 네 소유가 되리라.

시편 2:8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나라들을 포함하여 땅 끝까지의 권한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예수님은 그가 행한 것처럼 가르치는 권한을 주장하였습니다.

오실 예언자와 그리스도에 대해 각각 기록한 모세와 다윗과 관련된 예수

선지자와 산상 수훈

사실, 훨씬 전에, 모세는 그가 가르치는 방식에서 독특한 ‘예언자’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모세는 편지를 썼습니다

17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 내가 그들 가운데 너와 같은 예언자 한 사람을 세워 백성들에게 전할 말을 그에게 하겠다. 그러면 내가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가 백성들에게 전할 것이다.

19 그가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내가 직접 벌하겠다.

신명기 18:17-19

예수님은 자신이 한 것처럼 가르치면서 그리스도로서의 권위를 행사하시고 하나님 의 ‘말씀’의 권위로 가르칠 다가올 예언자에 대한 모세의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자 예언자였습니다.

예수와 모세

사실, 예수님은 산에서 설교를 하는 전체적인 방식으로 모세와 비교하고 대조하려고 했습니다. 이 설교를 하기 위해…

Gustave Doré , PD-US-expired , Wikimedia Commons를 통해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에게 나아왔다.

마태복음 5:1

예수님은 왜 산에 올라갔습니까?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주목하십시오.

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꼭대기에 내려오셔서 모세를 부르시므로 모세가 그리로 올라갔다.

출애굽기 19:20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산에 올라가실 때 모세의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이것은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올 예언자는

18 …너와 같은 예언자 한 (모세)…

신명기 18:18

예언자는 모세처럼 되어야 했고, 모세가 그의 가르침을 주기 위해 산에 올라갔기 때문에 예수도 그렇게 했습니다.

조화와 일치로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

이는 천년에 걸쳐 이어지는 생각과 의도의 통일성을 보여줍니다. 오랜 시간 간격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의 마음뿐입니다. 이것은 이 계획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계획들은 다른 사람들의 계획과 충돌합니다. 서로 상반되는 수많은 정치적, 경제적 계획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나 이 계획은 역사를 통해 이어지는 통일성과 조화를 나타내며, 이는 신성한 힘이 이를 움직이게 한 것을 나타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다

비록 예수님과 모세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서로를 본보기로 삼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로 산 위로 올라오게 하시고, 가까이 앉으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을 때…

21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려가서 백성들에게 나를 보려고 경계선을 뚫고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하여라. 그러다가는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22 나를 가까이하는 제사장들도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a]그들을 죽일 것이다.”

출애굽기 19:21-22

십계명을 받은 사람들은 죽음의 고통으로 산 근처에 갈 수 없었지만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 바로 산 위에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거리가 아닌 하나님과의 근접성이 특징인 새로운 시대의 새벽을 보여주었습니다. 신약성경이 설명하는 바와 같이

18 그래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외국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라 성도들과 똑같은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에베소서 2:18-19

예수님은 그의 청취자들이 그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통해 이제 우리가 ‘그의 가족’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메시지는 그가 ‘그의 가족 구성원’들에게 기대했던 것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너와 나 그리고 산상수훈

이 설교는 당신을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동기를 다루는 이런 종류의 명령을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그의 결론 문장에서 답을 알 수 있습니다.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마태복음 5:48

이것은 제안이 아닌 명령임을 주목해주세요. 그는 우리가 완벽해져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완벽하시며, 만약 우리가 그분의 가정 구성원이 되려면 완벽한 것 이외의 것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단지 좋은 일이 나쁜 일보다 더 많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가정에 합류시켜주면 우리는 그분의 가정의 완벽성을 파괴하고 이 세상과 같은 혼란된 상태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 탐욕, 분노가 오늘날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욕망, 탐욕, 분노에 얽매인 채로 그분의 가정에 합류한다면 그 가정은 빠르게 이 세상과 같은 문제들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가르침의 많은 부분이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보다는 우리 내면의 마음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그가 우리의 내면적인 마음에 어떻게 집중하는지 생각해보세요.

20 그러고서 예수님은 말씀을 계속하셨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거기서부터 악한 생각, 음란, 도둑질, 살인,

22 간음, 지나친 욕심, 악독, 속임수, 방탕, 시기, 중상 모략,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것들이 다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마가복음 7:20-23

우리에게 완벽한 가정

그래서 완벽한 내면의 순결은 그의 가정에 요구되는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완벽한 가정에 ‘완벽한’ 사람들만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면 어떻게 이 가정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충분히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충분히 잘 될 것이라고 절망할 때, 우리 자신의 장점을 믿지 않을 때, 우리는 ‘정신적으로 가난하다’가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모든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복음 5:3

우리에게 지혜의 시작은 이러한 가르침이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합니다! 그 기준은 ‘완벽해지세요’ 입니다. 우리가 그 기준을 받아들이게 하고, 우리가 그것을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장점에 의존하기 보다는 그가 주고 싶어하는 도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그의 가르침이 우리가 취해야 할 단계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그의 가르침이 가정한 권위를 보여주는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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