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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의 생수

성경의 이스라엘 땅은 세계에서 가장 큰 환영이 형성되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삶의 환영을 제공합니다. 이로 인해 그곳의 주민들은 생명을 부여하는 필수불가결한 물을 찾는 인간의 탐구에서 이끌어져 왔습니다. 이는 또한 성경 속의 지혜, 가장 큰 희망, 화려한 약속들에 대한 깊은 배경을 제공합니다. 이 약속들은 당신에게도 확장되어 만족스러운 삶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를 엿볼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배워야 한 일들을 알아야 합니다.

독특한 사해
David Shankbone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를 통해

독특한 사해

황량한 땅 가운데에 위치한 데드씨는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두드러진 지리적 특징입니다. 이는 지구상에서 해수면보다 431m 아래에 위치하며, 가장 낮은 고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메마른 땅 가운데에 이렇게 아름다운 큰 물 웅덩이가 있는 것은 주변 주민들에게는 매우 행운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 함량이 35%로 세계에서 가장 큰 영구 염수 호수인 만큼 어떠한 생명도 지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이름처럼 데드씨(죽은 바다)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눈에 들어가거나 상처 부위에 접촉하면 극도의 자극을 일으킵니다.

성경은 4000년 전에 아브라함을 언급하면서 처음으로 데드씨에 대해 언급합니다. 데드씨는 성경의 역사를 통해 이후의 작가들, 왕들, 예언자들에게 배경을 제공하며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작가들은 그 지역에서 생명과 죽음에 관련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물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에 관한 진리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물을 주제로하여 우리에게 약속을 전달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우리의 갈증을 진단하다

예레미야를 포함한 역사적 연대표

예레미야는 왕들 시대 말기(기원전 600년)에 살았으며, 이스라엘 사회에는 부패와 악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악행을 비난했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악행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시작했습니다.

13 내 백성이 범한 두 가지 죄는 생수의 샘인 나를 버린 것과 물을 담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스스로 판 것이다.

예레미야 2:13

예레미야는 물을 비유로 사용하여 그들이 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는 그들을 목마른 사람들로 비유했습니다. 목마른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좋은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하나님 본인이 그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생명의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님께 오지 않고 다른 원천에 의지했습니다. 그들의 고장난 물탱이는 장기적으로 물을 보관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들을 더욱 목마르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죄는 모든 형태에서 하나님 외의 다른 것들을 향해 턴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른 것들은 그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마치 누수하는 유리가 지속적인 상쾌함을 제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빈 추구의 결과로 목마르게 남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장난 물탱이만을 들고 있었고, 이는 그들의 죄로 인해 발생한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의미합니다. 사울은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성공적인 인물로서 자신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추구를 했는지 능숙하게 서술했습니다.

나쁜 수원의 바다에서 목마른 사람들

이는 우리가 부와 엔터테인먼트, 자기실현과 쾌락을 중심으로 한 현대 시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잘 교육받고, 가장 많이 여행하며, 즐거움을 추구하고, 기술적으로 발전된 시대이다. 우리는 손쉽게 이러한 것들과 현대의 다른 것들에 의지한다. 포르노, 불법적인 관계, 약물, 술, 탐욕, 돈, 분노, 질투와 같은 것들이다. 아마도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갈증을 해소해 줄 것이라고 희망한다. 하지만 마치 물을 갈망하면서 물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무의미한 죽음만을 간직한 사막의 Dead Sea와 같이, 이들도 물리적인 갈증을 영원히 해소하지 못하는 환영에 불과하다. 그리고 결국 죽음만을 가져올 뿐이다.

예레미야의 경고와 솔로몬의 기록은 우리에게 솔직한 질문을 하도록 유발해야 한다.

  • 우리는 왜 이렇게 부유한 현대 사회에서도 우울증, 자살, 비만, 이혼, 질투, 부러움, 증오, 그리고 포르노와 같은 문제들과 싸우고 있는 걸까?
  • 어떤 “탱크”를 사용하여 갈증을 해소하려고 하는가? 그들은 “물”을 유지할 수 있는가?
  • 우리는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 만약 솔로몬의 갈증조차도 그가 얻은 모든 것으로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어떻게 우리가 충족될 것인가?

예수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가르치며 우리의 갈증을 해소할 것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이스라엘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며 우리의 결론을 내린다. 그의 물에 관한 약속은 특히 두 가지 다른 종류의 물을 명심할 때 두드러진다. 이스라엘은 세계

이스라엘은 세계에 큰 물을 제공합니다

등록된 이스라엘의 건조한 환경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국가 생존에 필수적인 물 기술 분야에서 세계 선도자가 되어야 했다. 그들은 해수를 음용수로 변환하는 산업 규모의 세계 최고 수준의 역삼투 정수기 공장을 개발하고 건설했다. 이 기술은 수증기를 발산하는 다른 정수 기술보다 에너지 효율적이고 비용이 더 저렴하다. 이스라엘은 다섯 개의 이러한 정수기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음용수를 충분히 생산하여 갈릴리 호수를 보충할 수 있다. 중동 지역의 국가들은 이스라엘과의 협정을 체결하여 이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른 이스라엘 기술은 공기 중의 수분으로 음용수를 생성할 수 있다. 이 기술은 군대에 음용수를 공급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전 세계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확장되었다. 자동차 제조업체인 Ford는 최근 이 기술을 일부 차량에 도입하여 운전 중에 음료를 마실 수 있다. C02 카트리지를 판매하고 음용수를 탄산화하는 키트를 제공하는 SodaStream은 전 세계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어 ‘탄산수로의 걷어차기’를 할 수 있다.

정말로 이스라엘의 건조한 땅과 그의 Dead Sea는 세계의 갈증을 해소하는 세계 최고의 지도자로 발전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 생수를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스라엘인 예수님도 세상에 물 – 살아있는 물 – 을 제공한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우리의 갈증에 대한 예레미야의 진단을 배경으로 복음서에 기록된 이 대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시다

Distant Shores Media/Sweet Publishing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를 통해

예수님이 요한보다 더 많이 제자를 삼고 세례를 준다는 소문이 바리새파 사 람들의 귀에 들어갔다.

(그러나 예수님이 직접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로 향해 가셨는데

도중에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만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가라는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이르시게 되었다. 이 마을은 야곱이 그의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깝고

또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 예수님은 여행에 피곤하여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낮 12시경이었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오자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다.

그때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마을에 들어가고 없었다.

그 여자가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였다. 이것은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서로 교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0 그래서 예수님이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물을 좀 달라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생수를 달라고 했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선생님,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그런 생수를 구한단 말씀입니까?

12 이 우물을 우리에게 준 우리 조상 야곱과 그의 아들들과 가축이 다 이 물을 마셨습니다. 선생님은 야곱보다도 위대하십니까?”

13 “이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절대로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내가 주는 물은 그에게 끊임없이 솟구쳐나오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이 될 것이다.”

15 “선생님, 그런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16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너라.”

17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남편이 없다는 네 말이 옳다.

18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으나 지금 너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도 사실 네 남편이 아니고 보면 너는 바른 말을 한 것이다.”

19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1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이 산이든 예루살렘이든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문제 되지 않을 때가 오고 있다.

22 너희 사마리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 이것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23 아버지께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인 진실한 예배를 드릴 때가 오는데 바로 이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예배하는 사람은 영적인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25 “그리스도라는 메시아가 오실 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실 것입니다.”

26 그러자 예수님은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아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바로 그때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이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으나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또 왜 그 여자와 말씀하시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28 그 여자가 물통을 버려 두고 마을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29 “다들 와서 좀 보세요! 나의 과거를 죄다 말해 준 사람이 있어요! 이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하자

30 사람들이 마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들었다.

31 한편 제자들이 “선생님, 좀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자

32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33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을까?” 하고 서로 의아스럽게 생각하였다.

34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35 너희는 아직 넉 달이 더 있어야 추수 때가 온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떠서 들판을 바라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다.

36 이미 추수하는 사람이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위한 열매를 거둬들이고 있다. 이것은 씨 뿌리는 사람과 거둬들이는 사람이 함께 기뻐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37 그러므로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 는 말이 사실이다.

38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라고 내가 너희를 보냈다. 다른 사람들은 수고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수고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

39 예수님이 자기 과거를 죄다 말씀하셨다고 증거한 그 여자의 말을 듣고 그 마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40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그 곳에 머물러 달라고 하므로 예수님은 거기서 이틀을 머무셨다.

41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더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

42 그들은 그 여자에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당신의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이분의 말씀을 들었고 또 이분이야말로 정말 세상의 구주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오” 하였다.

요한복음 4:1-42

예수님은 두 가지 이유로 그녀에게 술을 청했습니다. 첫째, 그는 목이 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레미야의 진단대로 그녀가 목이 말랐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이 여러 명 있었고 남편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이웃들은 그녀를 부도덕하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왜 정오에 물을 가지러 혼자 갔는지 설명해줍니다. 마을 여성들은 아침의 서늘한 날씨에 우물에 갈 때 다른 마을 여성들로부터 소외된 그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의 뒤를 이어, 예수님은 그녀가 삶에 깊은 갈증, 즉 해소되는 갈증을 깨달을 수 있도록 목마름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는 그녀(그리고 우리)에게 오직 자신만이 궁극적으로 그녀의 내면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믿다 – 진실로 고백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살아있는 물’ 제안은 그녀를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했을 때, 그는 의도적으로 그녀의 깨진 수조를 인식하고 인정하도록 그녀를 자극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것을 피합니다! 우리는 아무도 보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의 죄를 숨기는 것을 선호합니다. 또는 우리는 우리의 죄에 대해 변명하면서 합리화하지만, 살아있는 물을 경험하고 싶다면 정직하고 우리의 ‘깨진 수조’를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다음과 같이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Distant Shores Media/Sweet Publishing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를 통해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죄가 씻음을 받고 주님 앞에서 새로워지는 때가 올 것입니다.

사도행전 3:19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예배하는 사람은 영적인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4:24

‘진실’은 우리의 잘못을 숨기거나 용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 진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놀라운 소식은 하나님이 이처럼 공공연한 정직함을 가지고 오는 사람은 그들이 무엇을 마셨는지에 관계없이 그 누구도 ‘찾고’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적 논쟁의 산만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직한 취약성이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종교적 논쟁으로 주제를 바꾸는 것은 숨기기 위한 완벽한 위장을 만듭니다. 세상에는 항상 많은 종교적 분쟁이 있습니다. 그 날에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 사이에 예배의 적절한 장소를 두고 종교적인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종교적인 논쟁으로 대화를 돌림으로써 그녀는 물이 새는 수조에서 관심을 돌리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녀는 이제 종교 뒤에 자신의 취약성을 숨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쉽고 자연스럽게 같은 일을 하는지, 특히 종교적인 관계가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틀렸는지 또는 우리가 어떻게 정확한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갈증에 대해 솔직해야 할 필요성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와 이 논쟁에 동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예배에서 자신에 대한 그녀의 정직함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어디서든 하나님 앞에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살아있는 물’을 받기 전에 정직한 자아실현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내려야 할 결정

그래서 그녀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녀는 종교적 분쟁 뒤에 계속 숨어있거나 아니면 그냥 그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갈증을 인정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숨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그녀는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종교 의식을 수행했지만, 지금은 그녀와 마을 사람들이 ‘신자’가 되었습니다.

신자가 되는 것은 단지 정신적으로 올바른 종교적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 비록 그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자비의 약속이 믿을 수 있다고 믿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죄를 은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오래 전에 우리를 위해 모델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취약한 질문

당신은 당신의 목마름을 용서하거나 숨깁니까? 당신은 독실한 종교적 관행이나 종교적 논쟁으로 그것을 숨기나요? 아니면 고백하나요? 무엇이 당신을 우리 조물주 앞에서 죄와 수치를 야기하는 깨진 수조들을 고백하는 것을 멈추게 합니까?

자신의 필요에 대한 여성의 솔직한 개방성은 예수를 ‘메시아’로 이해하게 했습니다. 그가 이틀 동안 머무른 후 마을 사람들은 그를 ‘세계의 구세주’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살아있는 물을 주신 예수님도 주 하나님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물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3 이스라엘의 희망이신 여호와여, 주를 버리는 자는 모두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떠나는 자들이 [a]흙에 기록된 이름처럼 사라질 것은 그들이 생수의 샘이신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7:13

추신 – 사해는 살아날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 살아있는 물로 우리의 내면의 갈증을 해소해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또한 성경은 미래의 어느 날 사해가 우리의 죽은 영적 상태를 보여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사해와 지중해

그때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방으로 흘러 요단 계곡을 지나 사해에 이른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들어가면 사해의 그 짠물이 단물이 될 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들어가는 곳마다 모든 생물과 물고기가 번성할 것이며 이 물이 흐르므로 사해의 물이 담수가 되고 이 강물이 흐르는 곳에는 모든 것이 살 것이다.

10 그 해안에는 어부들이 있을 것이며 엔 – 게디에서부터 엔 – 에글라임까지 어부들이 그물을 펴서 말리는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곳에도 지중해에 있는 고기와 같은 많은 종류의 고기들이 있을 것이다.

에스겔 47:8-10

이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발생합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흘러 나와 절반은 사해로, 절반은 지중해로 흐를 것이며 여름과 겨울에도 계속 흐를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이다. 그 날에는 한 분의 여호와만 계실 것이며 그의 이름도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스가랴 14:8-9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예견합니다 . 그렇게 할 때, 그분의 왕국 에서 그분은 사해를 생명으로 가득한 바다로 변모시키실 것입니다. 불임의 죽음에 대한 그 이미지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해는 두 이스라엘 , 즉 국가와 메시아 에게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정확하게 묘사할 것입니다 .

다음으로 우리는 예수께서 투자에 대해 가르치시는 것을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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