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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결한 바람둥이는 어떻게 마야의 지혜를 가르칩니까?


Maya는 ‘없는 것’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으며 따라서 ‘환상’입니다. 다양한 현자와 학파는 다양한 방식으로 마야의 환상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물질이나 물리적인 것이 우리의 영혼을 오도하여 속박에 얽매이고 가둘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물질을 통제하고 즐기기를 열망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정욕, 탐욕, 분노를 섬기게 됩니다. 그런 다음 종종 우리는 노력을 배가하고 실수에 실수를 더해 환상이나 마야에 더 깊이 빠집니다. 따라서 마야는 소용돌이처럼 작용할 수 있으며, 소용돌이는 힘이 커짐에 따라 점점 더 많은 것을 가두어 절망으로 이끕니다. Maya는 일시적인 것을 지속적인 가치로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행복을 이 세상에서 찾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러한 환상 또는 허영심을 탐구하는 지혜 문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지혜 시의 저자는 다윗 왕 의 아들 솔로몬이었습니다 . 그는 ‘태양 아래서’ 살면서 마야와 그 영향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기록합니다. 즉 물질만이 가치 있는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태양의 길 아래 있는 이 물질계에서만 지속되는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마야 경험 ‘태양 아래서’

전도서에서 솔로몬은 인생에서 만족을 찾기 위해 그가 한 모든 일을 묘사했습니다 그가 썼다:

나는 마음껏 즐기며 행복을 누리겠다고 생각하였으나 이것 역시 헛된 것이다. 웃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며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아무 유익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많이 생각한 끝에 계속 지혜로운 길을 추구하면서 술로 내 인생을 즐기려고 하였으며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짧은 인생을 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한 일은 수없이 많다. 나는 집을 짓고 포도원과 정원과 공원을 만들어 각종 과일 나무를 심었고 관개 시설을 위해 저수지를 팠으며 많은 노예를 사들이고 내 집에서도 노예를 낳게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살았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가축을 소유하였다. 나는 또 많은 왕들과 여러 도에서 은과 금을 거둬들였으며 노래로 나를 즐겁게 하는 남녀와 뭇 남성들이 좋아하는 여자와 첩을 수없이 거느리고 있었다. 이와 같이 나는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산 그 어떤 사람보다 더 크게 되었으며 항상 지혜를 잃지 않았고 10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소유하였으며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고 더구나 내가 한 모든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니 이것이야말로 내 수고의 대가였다.

전도서 2:1-10

부, 명예, 지식, 사업, 여자, 쾌락, 왕국, 직업, 술… 솔로몬은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대나 우리 시대의 누구보다 더 많이. 아인슈타인의 영리함, 잭 마의 부, 볼리우드 스타의 사회/성생활,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자와 같은 왕실 혈통. 모두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누가 그 조합을 이길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 중에서 그가 만족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의 또 다른 시인  Song of Songs 에서 역시 성경에 나오는 그의 에로틱하고 뜨거운 사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평생 만족을 줄 것 같은 바로 그 추구. 거의 3000년이 된 이 시는 최고의 발리우드 사랑 영화의 낭만적인 강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Brugger의 “Solomon at his Throne”
Andreas Brugger ,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를 통해

성경은 그가 막대한 권력과 부로 700명의 정부를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볼리우드나 할리우드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랑, 모든 부, 모든 명성과 지혜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아들이며 예루살렘의 왕인 전도자 솔로몬의 말이다.

전도자는 말한다. “모든 것이 헛되고 무가치하며 의미가 없으니 아무것도 소중한 것이 없구나.”

사람이 평생 동안 수고하여 얻는 것이 무엇인가?
세대는 왔다가 가지만 [a]세상은 변함이 없구나.
5 해는 떴다가 져서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되돌아가며
바람은 남으로 불고 북으로 불다가 돌고 돌아 다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도 바다를 다 채우지 못하며 그 물은 강으로 되돌아가 다시 바다로 흐른다.
만물의 피곤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니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들어도 만족함을 모르는구나.
전에 있던 것도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한 일도 다시 하게 될 것이니 세상에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10 “보라, 이것은 새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11 우리가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않으니 앞으로 올 세대들도 우리 시대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않으리라.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13 정신을 집중하고 지혜를 모아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깊이 연구하고 살펴보았으니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운명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다.14 내가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을 보니 다 허무하여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다.

전도서 1:1-14

11 그러나 잘 살펴보니 내가 애써 이룩한 그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다 무익한 것이었다.

12 그래서 내가 지혜와 미치는 것과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결국 왕은 이전의 왕들이 이미 이룩한 일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13 내가 보기에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나은 것은 빛이 어두움보다 나은 정도에 불과하다.
14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머리에 눈이 있으나 어리석은 사람은 어두움 속을 다니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당할 운명이 같은 것을 깨닫고

15 혼자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리석은 자가 당한 일을 나도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얻은 유익이 무엇인가? 이것도 역시 헛된 것이다.”

16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영원히 기억되지는 못할 것이며 언젠가는 다 잊혀지고 말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도 죽음에 있어서는 어리석은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17 그러므로 [a]산다는 것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괴로운 것뿐이며 허무하여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18 내가 수고한 모든 일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은 내 다음 사람에게 그 모든 것을 물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19 그가 지혜로운 사람일지 어리석은 사람일지 누가 알겠는가? 내가 온갖 정력과 지혜를 쏟아 이룩한 것을 그가 다스릴 것이므로 이것도 역시 헛된 것이다. 20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에서 고되게 일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21 사람이 지혜와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하여 아무리 수고한 일이라도 그 모든 것을 수고하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으니 이것도 헛되고 불행한 일이다. 22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는 것이 무엇인가? 23 평생을 수고하여도 근심과 고통뿐이며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니 이것도 헛된 것이다.

전도서 2:11-23

쾌락, 부, 일, 진보, 궁극적으로 만족 시킬 낭만적 사랑에 대한 약속은   그에게 환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것이 만족에 이르는 확실한 길로 여러분과 제가 여전히 듣는 동일한 메시지입니다. 솔로몬의 시는 그가 이러한 방식으로 만족을 찾을 수 없었다고 이미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 성찰하기 위해 시를 계속했습니다.

19 결국 사람이나 짐승에게는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죽으면 저것도 죽는다. 사람과 짐승은 다 같이 호흡하는 동물일 뿐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 20 사람과 짐승은 다 같은 곳으로 가게 되는데 모두 흙에서 났으므로 흙으로 돌아간다. 21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속으로 내려간다고 누가 입증할 수 있겠는가?

전도서 3:19-21

 의인과 악인, 선인과 악인, 깨끗한 사람 과 부정한 사람  ,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 모두에게 운명 이 있습니다.

선인에게 그러하듯    이 죄인에게도 그러하다.서약하는 자들과 맹세    하기를 두려워하는 자들도 그러하니라.

2 [a]인간은 하나의 공동 운명체이다. 의로운 자와 악한 자, 선한 사람과 나쁜 사람, 깨끗한 자와 더러운 자,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가 다 같은 운명에 처해 있으니 선한 사람이 죄인보다 나은 것이 없고 맹세를 하는 자가 맹세하지 않는 자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인간이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은 공평하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태여 선하게 살려고 애쓰지 않고 한평생을 미친 개처럼 살다가 결국 저 세상으로 가고 만다. 그래도 살아 있는 자가 희망이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고 그들의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전도서 9:2-5

성스러운 책인 성경에 부와 사랑을 추구하는 시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것들을 거룩함과 연관시키지 않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성서가 금욕주의, duhka 및 도덕적 계율에 대해 논의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왜 솔로몬은 성경에서 죽음에 대해 그렇게 최종적이고 비관적인 방식으로 기록합니까?

오늘날 흔히들 추구하는 솔로몬의 길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의미나 쾌락, 이상을 창조하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솔로몬에게 좋지 않았습니다. 만족은 일시적이고 환상이었습니다. 그는 마야를 경험했습니다. 그의 시는 큰 경고 신호처럼 성경에 있습니다. “이 길을 택하지 마십시오. 실망할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을 가고 싶은 유혹을 받기 때문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합니다.

복음 – 응답하는 솔로몬

노년기의 솔로몬
Yitzilitt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일 것입니다. 삶에 대한 발언도 했다. 사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0 도둑이 오는 것은 양을 훔쳐다가 죽여 없애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요한복음 10:1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메기 쉽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복음 11:28-30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솔로몬이 경험한 허무함과 절망에 대해 대답하십니다. 아마도, 아마도, 솔로몬의 길의 막다른 골목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결국  복음은  말 그대로 ‘좋은 소식’을 의미합니다. 복음이 정말  좋은 소식 입니까 ? 대답하려면 복음에 대한 정보에 입각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의 주장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 없이 복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이것은 내가 택한 여정이었습니다. 이 웹 사이트의 기사는 여기에 있으므로 귀하도 탐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시작 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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