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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에 대한 통찰

심리학은 두 개의 그리스어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ology’는 λόγος(logos = 단어, 연구)에서 유래하며, ‘Psych’는 ψυχή(psuché = 영혼, 생명)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심리학은 우리의 영혼이 내 마음, 감정, 행동, 지성에 대한 연구입니다. 심리학은 19세기에 학문적인 연구로서 자리잡았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Wikipedia
지기스문트 슐로모 프로이트

심리학의 가장 잘 알려진 선구자 중 한 명은 지그문트 프로이드(Sigismund Schlomo Freud 1856-1939)입니다. 그는 심리분석이라고 알려진 심리학 분야의 창시자였습니다. 프로이드는 의사로서 교육을 받았지만, 질환을 탐색하고 치료하는 수단으로 최면에 흥미를 느껴 이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의료 직책을 사임한 후, 그는 인격 장애를 이해하고 치료하기 위한 이론과 프레임워크를 연구하는데 남은 인생을 바쳤습니다.

프로이드의 유대인 출신과 세속적인 유대인 정체성과의 강한 연관은 그의 이론과 연구의 발전에 강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전기작가들이 지적한 바입니다. 사실, 심리분석의 초기 동료와 동료들은 모두 유대인이었습니다. 심리분석과 프로이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그의 첫 번째 환자인 안나 O도 강한 유대인 정체성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통찰력과 창의성은 우리 모두가 자신과 영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론들을 인류에게 열어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언이 아닙니다.

영향력 있는 유대인으로서의 프로이트와 예수

하지만 프로이드와 그의 동료들은 우리의 심리에 대한 이해에 기여한 유일한 인물들은 아닙니다. 프로이드보다 1900년 전에, 나사렛의 예수님의 ψυχή에 관한 가르침도 고려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그의 유대인성에서 살펴보았으며, 예수님은 유대 국가의 의도된 최종 목표를 구현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통찰력, 발전, 경험은 어느 정도로든 유대 국가 전체와 일치합니다 (우리의 결론은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이에 따라,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심리나 영혼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급진적인 이론으로 인해 분열을 초래하는 인물로 남아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아이들이 아버지를 미워하고 어머니와 성관계를 원하는 생애의 단계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고안하고 널리 알렸습니다. 프로이드는 리비도의 존재를 가설로 세우고, 정신적 과정과 구조에 투자되며, 성적인 애착을 유발하는 성적으로 동화된 에너지라고 주장했습니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리비도는 억압되어서는 안 되며, 그 대접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의 욕망을 허락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와 우리의 정신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심리에 관한 가르침으로 인해 분열을 초래하는 인물입니다. 다음은 그가 ψυχή에 관해 한 두 가지 설교로, 이는 오늘날까지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킵니다.

24 그러고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25 자기 생명을 (ψυχή)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ψυχή)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ψυχή)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자기 생명을 (ψυχή)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마태복음 16:24-26

예수의 영혼의 역설(ψυχή)

예수님은 ψυχή(ψυχή)에 관해 가르치기 위해 역설을 사용합니다. 이 역설은 자명한 진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자신의 ψυχή을 보존하거나 가질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죽음이 오면 우리의 ψυχή는 잃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교육 수준, 재산, 거주지, 삶의 경험을 통해 얻는 권력과 명성과 관계없이 항상 참된 사실입니다. 우리는 ψυχή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국은 잃게 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일부는 우리는 이를 염두에 두고 ψυχή의 경험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보호하여 보존해야 한다고 추측합니다. 이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견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한다면 영원히 ψυχ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예수님은 ψυχ의 역설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장합니다. 그는 우리가 그에게 ψυχ을 내어주기를 강조하며, 그럴 때에만 우리가 그것을 보존하거나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는 우리가 보존할 수 없는 것(우리의 ψυχ)을 영구히 되찾기 위해 그에게서 그것을 포기하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갖도록 요구합니다. 주목할 점은 그가 우리에게 ψυχ을 교회, 종교 또는 중요한 종교 인물에게 주도록 제안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 그에게서 ψυχ을 내어주도록 요구합니다.

예수의 두 번째 ψυχή 역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ψυχ을 예수님에게 맡길 정도로 그를 믿는 데 망설임을 겪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삶 속에서 우리의 ψυχ을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평화, 안식과 평온을 창출하는 대신, 그 반대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현실을 이용하여 ψυχ의 두 번째 역설을 가르치는 데 사용했습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메기 쉽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복음 11:28-30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영장, 당나귀, 말을 수레 앞에 동여매어 농업이 시작된 이래로 인류를 지치게 한 가장 힘든 일인 토지 갈기를 수행했습니다. ‘영’은 따라서 어려운 노동을 의미하는 비유로, 사람을 완전히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역설을 우리에게 던짐으로써, 우리에게 올릴 영상은 우리의 영혼을 인식시킬 것이라 주장합니다. 우리가 그의 영장을 지면서 우리의 삶은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설교하는 것을 실천하십시오

서양 세계는 크게 프로이드의 이론을 적용하려고 해왔습니다. 특히 자기 충족, 의미 찾기, 성적 탐구에서 자유를 찾으며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이드는 자신의 가족에게는 자신의 이론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녀 간의 사회적 혁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도 집안에서는 사회적으로 보수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그의 엄격한 일정에 따라 그의 식사를 준비하고, 칫솔에 치약을 발라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그의 성 이론에 대해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들을 가족 의사에게 성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프로이드는 자신의 자매와 딸들을 엄격히 통제하여 일하러 나가지 못하게 했고, 그들을 집에서 바느질이나 그림 그리기, 피아노 연주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 반면,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에 대한 가르침을 먼저 자신의 삶에 적용했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경쟁과 질투로 다투자, 예수님은 개입했습니다:

25 예수님이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지배하고 기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럴 수 없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의 [b]죄값을 치르기 위해 내 생명마저 주려고 왔다.”

마태복음 20:25-28

예수님은 자신을 섬기기 위해 삶을 사는 것으로 자신의 멍에를 지었습니다. 그는 그 정도까지 자신의 영혼을 많은 사람들을 위한 속죄나 대가로 주었습니다.

정말 가벼운 요크?

예수님의 멍에가 진정으로 가벼우며 안식의 근원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이드의 생활을 발전시키는 길은 실제로 피곤한 부담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로이드의 아이디어를 약 한 세기 동안 적용한 결과를 생각해보십시오. 헤드라인과 소셜 미디어 피드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MeToo, 무성애성, 에프스타인(사건), 끝나지 않는 성 폭력 혐의, 만연한 포르노 중독 등입니다. 우리가 발전했다고 생각할 때, 현재의 상황을 살펴보세요.

프로이트와 예수: 통찰력을 뒷받침하는 자격 증명

프로이드의 자격증과 그의 아이디어의 신뢰성은 그것들이 과학적이라는 인식에 근거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정말로 과학적이었을까요? 그의 아이디어는 관찰과 실험의 과학적 방법에 근거하여 발전되지 않았습니다. 프로이드는 간단히 사례 연구로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대의 다른 소설 작가들처럼 이야기를 풀어내었지만, 그의 글에는 진실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었고, 우리는 그를 믿었습니다. 프로이드 자신이 말한 대로,

내가 쓰는 사례 역사가 단편 소설처럼 읽혀야 하고, 어떤 사람이 말할 수 있듯이 과학의 진지한 특징이 없다는 것이 여전히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Paul Johnston, A History of the Jews 에서 인용한 바와 같습니다 . 1986년, p.416

예수는 (ψυχή)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그것을 적용할 뿐만 아니라 그의 (ψυχή)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내가 생명을 다시 얻으려고 내 생명을 (ψυχή) 버리기 때문이다.

18 이 생명을 내게서 빼앗아 갈 자는 없지만 내가 스스로 버린다. 나에게는 생명을 버릴 권한도 있고 다시 가질 권한도 있다. 이것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특권이다.”

요한복음 10:17-18

그는 자신의 (ψυχή)에 대한 통찰력에 대한 자격증을 자신의 글이나 획득한 평판에 근거하지 않고 부활에 근거로 두었습니다.

다음으로, 그가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파헤칩니다. 우리는 AI를 기반으로 한 가상 현실들이 우리의 물리적 현실의 근원을 알려주는 단서를 제시하는 것을 통해 이를 살펴봅니다. 우리 문명이 구축된 기초적인 구성 요소인 알파벳, 실제 문자 그리고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에 대해 숙고해보면서 시작해보겠습니다.

  1. 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1987. 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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