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권위에 의문을 가진 비평가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이전에 왔던 선지자들이 자신의 삶을 예언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예가 있다:
… 이것들이 나를 증거하는 성경들이다 … (요한복음 5:39)
달리 말하면 예수님은 자신보다 수 백년 앞선 구약성서에서 자신이 예언되었다고 주장하셨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저서에 영감을 주셨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도 수백년 후의 미래를 확실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그가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오신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라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지를 알아보는 시험이다. 구약성경은 우리가 이 똑같은 질문을 우리를 위해 검토하고 고려할 수 있게 한다.
첫번째 리뷰. 예수님의 오심은 구약의 맨 첫부분에서 암시되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희생이 예수님이 희생되실 장소를 예언한 반면 유월절은 그것이 일어날 그 해의 날짜를 예측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시편 2편에서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오실 왕을 예언하는데 사용되었음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제목과 테마를 사용하여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미래를 바라보며 씌여졌다. 이사야서는 (기원전750년) 후에 구약의 책들이 발전시켰던 주제-다가오는 가지에 대한 주제-를 시작했다.
이사야와 분지
아래 그림은 몇몇 구약의 다른 저자들과 함께 이사야가 역사적인 연대기에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적인 연대기에서 보이는 이사야. 그는 다윗왕조의 통치기간에 살았다.
당신은 이 연대기에서 이사야서가 다윗의 왕조(기원전 1000– 600)의 시기에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시기에 (기원전750) 왕조와 왕국은 부패했다. 이사야는 왕들이 하나님께 돌아가서 모세율법의 실천과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간청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고, 그래서 이스라엘은 파괴되고 왕실은 끝이 날 것이라예언했다.
그는 그 왕조에 대해 특별한 은유 또는 그림을 사용하여 그것을 큰 나무처럼 묘사했다. 이 나무는 그 뿌리를 다윗왕의 아버지인 이새(Jesse)에 두고 있다. 이새를 토대로 그 왕조는 다윗과 함께 시작되었고, 그의 후계자인 솔로몬 때부터 나무는 계속 성장하고 발전했다.
처음에는 나무… 그후에 그루터기… 그리고 나뭇가지
이사야는 이 ‘나무’ 왕조가 곧 절단되어 그루터기로 줄어들 것이라고 썼다. 다음은 그가 나무의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그루터기와 가지의 수수께끼로 변하는 방법이다.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싹이 날 것이다. 그 뿌리에서 가지가 열매를 맺을 것이다.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 영은 지혜와 깨달음의 영, 권고와 능력의 영, 그리고 지식의 영이 될 것이다. ” (이사야 11:1-2)
이 ‘나무’의 절단은 바빌로니아 인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 백성과 왕을 추방하여 바빌론으로 끌고 간 시기인 이사야 150년 후 기원전 600년경에 일어났다. (위의 연대기의 붉은색 기간) 이새는 다윗왕의 아버지이면서 다윗왕조의 뿌리였다. 그러므로 ‘이새의 그루터기’는 다윗왕조의 다가오는 파괴에 대한 비유였다.
가지: 지혜를 지닌 다윗으로부터 오는 ‘그(him)’
그러나 이 예언은 단지 왕들의 멸망보다는 더 먼 미래를 보았다. 이사야는 ‘그루터기’가 죽은 것으로 (그루터기처럼) 보일지라도 먼 미래의 어느날 나무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가지(the Branch)로 알려진 새싹(a shoot)이 그루터기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가지(Branch)가 ‘그(him)’로 언급되므로 이사야는 왕조가 끊어진 후 다윗의 계보에서 나오는 특정한 사람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 사람은 마치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머물고 있는 것과 같이 지혜와 능력과 지식의 자질을 가질 것이다.
예수님…지혜를 지닌 다윗으로부터 온 ‘그’
이새와 다윗왕이 예수님의 조상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새의 그루터기로부터’ 온다는 필요조건에 부합하시다. 예수님을 매우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지니신 지혜와 이해심이다. 대항하는 사람들이나 제자들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의 예수님의 기민함, 침착함, 그리고 통찰력은 계속해서 비판하는 사람들과 추종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기적을 통한 그의 복음의 능력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 기적을을 믿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는 있었으나 아무도 그것들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언젠가 이 가지(Branch)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던 탁월한 지혜와 능력을 지녔다는 특성에 적합하시다.
예레미야와 가지
그것은 이사야가 역사에 세운 이정표와 같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의 이정표는 몇가지 표징(sign) 중 단지 첫번째 것일 뿐이다. 이사야 후 150년을 살았던 예레미아는 다윗왕조가 그의 눈 앞에서 실제로 멸망당했을 때 이렇게 기록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예레미아 23:5-6)
예레미아는 150년전에 이사야가 시작한 다윗 왕조의 가지(Branch) 주제(theme)를 확장한다. 그 가지는 통치하는 왕이 될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편2( the Psalm 2 )예언에서 오실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 메시아로 말한 것이다. 그 가지(Branch)와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이고 동일할 수 있을까?
가지: 하나님, 우리들의 의로움
그러나 이 가지를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그는 또한 ‘우리’(즉 우리들 인간)의 의(righteousness)가 되실 ‘주님(LORD)’ 으로 불릴 것이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함께( with Abraham, ) 보았던 것처럼, 인간의 문제는 우리가 ‘타락한다’(we are ‘corrupt’)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의’룰 필요로 한다. 여기, 가지를 설명하는 것에서 우리들은 예레미야의 미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의를 주님(LORD)- 야웨(YHWH) 그 자신 (야웨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다)-을 통해 얻을 것이라는 힌트(hint)를 얻는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스가랴는 이 다가오는 가지 (Coming Branch) 주제를 더욱 발전시키면서 우리를 위해 더 자세한 내용을 채워넣고 심지어 예수님의 이름까지 예언한다. 우리는 다음에 이것들을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