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심

인간의 기원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차근 차근 알아 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에 성경을 사용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가 생각해 보자. 한 개의 유전자 코드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컴퓨터 코드 만큼 뛰어나다. 우리는 현대의 최신 나노기술보다 작은 크기의 단백질로 부터 만들어진 기계로 볼 수도 있는데 자동으로 세포의 손상을 복구하는 능력까지 갖고 있고, 개성과 의식을 갖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 – 최고 디자이너 – 에 의해 창조되었을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우선 성경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자…”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6~27절)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하나님이 팔이 둘이고 머리가 하나인 물질적인 존재란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 보다는 사람의 기본적인 성질이 하나님의 유사한 성질을 이어받았다는 조금 더 깊은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성경에 씌어 있는) 하나님과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사람들은 공통으로 지적 능력, 감정, 의지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때때로 슬프거나, 마음 아파하거나, 화내거나, 기뻐하는데, 우리 인간들이 경험하는 것과 같은 영역의 감정들이다. 우리는 매일 매일 어떤 것을 선택하고 결정한다. 성경의 하나님도 이와 비슷하게 어떤 것을 선택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추론하고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것도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이 그런 능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도 지적 능력과 감정, 그리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인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이런 면들을 좀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면 우리는 “나”와 “당신”으로 우리 스스로를 분별해서 인지할 수 있다. 우리는 비인격체인 “그것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이런 근본적인 관점에서 볼때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스타워즈 영화시리즈에 나오는 ‘힘’과 같은 비인격체로 그려질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이미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인격체이다.

우리는 미적감각이 있는가

우리는 또한 예술이나 드라마를 높이 평가한다. 우리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하고, 또한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보라. 이것은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이나 문학에 대해서도 그렇다. 음악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하고 – 여기에다 춤추는 것은 또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생각해보라. 음악은 우리의 생활을 풍부하게 만든다. 우리는 소설, 연극, 영화들에 들어있는 좋은 스토리를 사랑한다. 하나님이 예술가이고 우리가 그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우리 자신에게 즐거움과 활력, 생동감을 주기 위해 예술을 이용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것이다. 왜 우리가 미술, 드라마, 음악, 춤, 문학 등에 내재적으로 미적 감각이 있는지 의문을 가질만 하지 않은가? 솔직한 무신론자이자 인지 과정에 대한 이해에 권위가 있는 대니얼 대닛으로 부터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대답한다.

“이러한 연구의 대부분은 여전히 음악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좀 처럼 이렇게 질문하진 않는다. 왜 음악이 존재할까? 라고. 간단한 대답이 있는데 이 부분에 관해서는 맞는 말이다: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그것을 많이 만들어내게 된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음악을 좋아하는가? 이유는, 음악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음악이 아름다운가? 이것은 정말 멋진 생물학적인 질문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여기에 대한 좋은 해답은 없다.” (대니얼 대닛. Breaking the Spell: Religion as a Natural Phenomenon.  p. 43)

인간으로서의 우리에 대한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물질적인 과정이란 것에만 기반해서 설명될 필요가 있다면 왜 예술이 우리에게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 유물진화론의 관점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세계적인 권위자로 볼 수 있는 대닛이, 그냥 모르겠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성경적인 관점으로 보면 신이 예술가이고 미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름다운 것을 만드셨고 아름다움을 즐기신다. 그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에서 시작하면 무신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설명이 된다.

우리는   윤리적인가

게다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짐’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윤리적인 자질을 설명해준다. 우리는 모두 사용하는 언어나 문화는 다를지라도 무엇이 ‘나쁜’ 행위인지, 무엇이 ‘좋은’ 행위인지를 이해한다.  윤리적인 자질은 우리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유명한 무신론자인 리차드 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윤리적인 판단을 조종하는 것은 우주적인 윤리 문법이다 … 언어에서 처럼, 우리의 윤리문법을 만드는 원리가 우리의 인지능력의 범위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  (리차드 도킨스, The God Delusion. p. 223)

도킨스는 선과 악을 우리가 아는 것이 언어에 대한 능력 처럼 우리 안에 새겨져 있다고 설명한다. 도킨스는 우리의 윤리 능력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이것이 가장 직접적이고 간단한 설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윤리적이고 우리가 그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윤리적인 자질을 갖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내면에 새겨져 있는 능력이다. 이렇게 인정하지 않는 것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또 다른 유명한 무신론자인 샘 해리스의 반대 의견을 들어보자.

“만약 신앙이 윤리의 유일하고 실재적인 기반이라고 믿는 것이 옳다면, 무신론자는 유신론자들 보다 좀 덜 윤리적이라야 한다.” (샘 해리스. 2005. Letter to a Christian Nation p.38-39)

해리스는 잘못 이해하고 있고 전적으로 틀렸다. 성경적으로 얘기하면, 우리의 윤리적인 감각은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에서 오는 것이지 신앙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신론자들도 윤리적인 감각이 있고, 윤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이다. 무신론은 왜 우리가 – 우리 모두의 내부에 –윤리 감각이 있는지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모두 관계를 중하게 생각하는가

따라서 성경적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의 관측이나 기억을 통해 알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지식을 알 수도 있고, 반대로 인간에 대한 지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사람들이 관계를 얼마나 중하게 생각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근데 친구와 같이 보면 더 훨씬 더 좋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의미있는 친구관계와 가족 관계는 우리의 웰빙에 대한 느낌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역으로, 외로움이나 깨어진 가족 관계나 친구 관계는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맺고 있는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그런 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면 우리는 하나님도 이처럼 관계를 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러하다. 성경에서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이다…”(1 John 4:8). 성경의 많은 부분들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사실상 성경 안에서 예수가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이와 관련해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이 둘 다 필요한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주체로 생각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그냥 ‘세상을 움직이는 힘’, ‘ 최초 원인’, ‘전지적인 신’ 혹은 ‘은혜를 베푸는 존재’ 등으로만 생각한다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생각 속에서 우리가 지어낸 신이 되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은 이런 모든 요소들을 다 포괄하시지만 ‘관계’에 그야말로 열정적이신 분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을 갖고’ 계시다기 보다는 ‘사랑 그 자체’이시다.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성경이 다룰 때 가장 두드러진 두 가지 모습은 아버지와 자녀로서 표현되거나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표현된다. 감정이 배제된 철학적인 비유는 아니지만 가장 깊고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에 비유하고  있다.

이제 기초가 마련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정신, 감정, 의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감각이 있고 스스로를 인지한다. 우리는 ‘좋은 것’ ‘공정한 것’에 내적으로 이끌리는 ‘윤리 문법’을 갖는 윤리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아름다운 것들, 드라마, 예술 그리고 스토리를 개발하고 평가하는 본능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재적으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친구를 만들어간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이러하시기 때문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유추된 결론은 이제까지 앞에서 우리가 관찰한 것들과 적어도 일치한다. 다음에 올릴 글에서는 왜 우리들의 관계가 항상 실망스러운지 왜 하나님과 거리가 느껴지는지에 대한 성경의 설명을 보기로 하겠다. 왜 우리의 가장 깊은 바램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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